2016년 3월 26일 토요일

"스님이 변해야 불교 미래있다".

                       해인사 용탑선원 해섭당 해덕스님

“스님이 변해야 불교 미래 있다”
- 화제의 인물 -
해인사 용탑선원 포교전법단장  해섭당 석해덕스님

편집국 | 2009/05/25 10:34

"현대사회에 맞는 포교위해 스님들 분발 필요"

             용탑선원 칠불보전에서 법문중인 해섭당 해덕스님

재가불자들에게 스님들은 무섭고,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일지 모른다. 재가불자들에게 스님들은 모든 것을 훌훌 던지고 속세를 초월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해인사 용탑선원 포교전법단장겸 선화사 회주 해덕스님은 언제봐도 늘 편한 스님이다. 서글서글한 얼굴, 찡그리는 법 한번 없이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건네는 스님이기 때문이다.

“공양은 하고 오셨나요?”만날 때 마다 스님은 공양 타령을 한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며 밥은 꼭 챙겨먹으라고 신신당부한다. 한번은 농으로 공양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만사를 제쳐두고 손을 끌어당겨 낭패를 본 적도 있다. 사람 마음 잡는데는 스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 듯 하다.

                    월운 큰스님 모시고 보살 수계대법회 봉행

스님은 늘 분주하다. 경주 서라벌대학 강의도 준비해야 하고 절일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사람 만나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 스님은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들에게 안부전화를 받고 하기에 바쁘다. 그렇게 바쁜 스님이지만 해가 지면 절에 들어가 수행정진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현대사회에 맞게 포교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스님들이 우선 변해야 합니다. 잠을 덜자더라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대중 포교를 할 수 없지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게 뭐죠? 관심입니다. 관심이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죠.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뭔지 아세요? 바로 무관심입니다”

               
                  서라벌대학 장례서비스경영과 교직원들과

스님은 절에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늘 마음을 내놓고 산다. 허허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속도 없는 스님 같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머릿속은 불교와 민족을 걱정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과거 한 불자가 정치문제를 가지고 스님과 대화를 하다가 스님의 해박한 지식과 화술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만 적이 있다. 그때 그 불자는 “산속에 계신 스님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아세요? 참 대단하십니다”며 손사레를 쳤다.

“불자들과 마음을 열고 어울려야 그들과 호흡할 수 있습니다. 가족과 같아야죠. 개인적 바램이 있다면 청소년 포교, 인터넷 포교, 문서포교를 내 뜻대로 여법하게 하고 싶습니다. 사적인 축제나 명예가 아닌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 불교를 위하는 포교 말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신도들에게 법문하는 모습

특히 스님은 요즘 대중포교와 인터넷 포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스님은 “승적도 없는 사람들이 스님을 자청하며 누리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며 “이런 사람들이 정리되어야 열심히 인터넷 포교에 정진하고 있는 스님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불교를 먹칠하는 불자아닌 사기꾼부터 정리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7년 7월 맨발로 국토순례하는 모습

민족·평화통일 위한 전국 맨발 순례 봉행
스님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평화통일기원 맨발 국토순례를 봉행했다. 말이 맨발순례지 한 여름 폭염을 헤치고 걷는다는 것은 수행자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임진각을 출발해 목포까지  국토를 맨발로 순례했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고통과 아픔이 밀려왔지만 지구촌 유일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비극과 굶어죽는 북한 동포를 생각하며 행진을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분단문제를 말로만 떠들지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라는 것이 실천이 없으면 다 공염불입니다. 중생을 보살피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특히 우리불교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한 민족종교입니다. 불교가 해야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우리 스님들이 먼저 시대와 역사를 위해 실천하고 앞서 나가야 합니다”

 순례중 도로변에서 노제를 지내며 미숫가루로 공양를 대신한 고행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출가 후 태백산 문수봉과 지리산에서 행한 일천일 기도 회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원효대사가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던 중 마지막 묵으며 깨달음의 물을 마셨던 회나무 밑 그 자리 경기도 화성시 에서 태어난 스님은 무공산 봉림사에서 동진출가했다.

                                      해섭당 해덕 스님


                        용탑선원 선방을 나서시는 해덕스님

광진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북한산 흥국사를 거쳐 광성사, 와룡사, 와룡선원, 봉덕사, 법륜사, 법원사 등을 창건했다. 사찰불사에 공을 드린 스님은 그 바쁜 와중에도 중국으로 건너가 산동중서의종합대학을 졸업했다. 또 Thailand wanmongkoro college에서 불교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스님은 현재 중국 산동 유정한의원 원장으로 시무하고 있다.


다양한 사회경력 소유… 중국통으로 유명

1996년 동국대불교대학원불교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현재 동국대불교대학원 총동문회 이사 겸 수석부회장과 동림동문회 간사 소임을 맡고 있다. 이정도면 만족할 텐데 스님은 바른 불교장례 문화 보급과 후학 양성을 위해 경주서라벌대학 장례서비스경영과 지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스님은 또한 한국불교장의총연합회 중앙회장, 연화상조보건복지협회 회장, 한국납골산업협회 지도위원으로 장례문화 선진화에 나서고 있다.

일찍이 민족의 평화통일에 발벗고 나섰던 스님은 중국 통으로 소문나 있다. 중국의 정세는 물론 중국불교, 중국문화, 중국의학, 조선족 문제 등 중국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중국 위해 호림정사 방장 시절

스님은 “통일,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우리 사회현안은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우리 핏줄인 조선족과 북한에서 탈주한 동포들도 있습니다. 구호가 아닌 실천과 관심을 통해 중국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전하신다.
                   해섭당 해덕스님의 기도법당 용탑사미타굴


용성대종사님과 12제자큰스님들의 진영앞에 서신 해덕스님


 
용탑선원 미타굴에서 기도중이신 해덕스님
                   
해섭당 해덕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해인사 용탑선원 포교전법단 단장의 소임을 맏고있다. 용탑선원에  모셔진 용성조사스님의 상좌스님이신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을 세번씩  지내신 윤고암대종사 스님의 상좌스님이신 화남당 석가산 스님의 상좌로 율맥을 이은 전강 상좌승이다. 해섭당 해덕스님은 중국 조계남화선사에서 논.율.장의  삼장대법사 과정을 이수하시고 삼장대법사로 품수를 받으시기도 했댜

민족의 안녕과 인연된  불자와 

                평화를위한 끝없이 이어지는 스님의 기도와 축원

스님은 무슨 소원을 빌까? 물어보진 않았지만 평소 스님이 늘 주장했던 것과 같이 스님은 스님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살아가자고 부처님께 기도드릴 것 같다. 신나고 재미있고 평화롭게 모두가 웃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스님. 오늘도 스님은 인연 맺은 중생들을 살피기 위해 길을 나섰다.